'시'가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대개 두 가지 대답을 듣는다.
'짧다', '어렵다'
두 가지의 대답을 들으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든다. '어렵다'라는 말이 '아주 싫고 별로'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시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담은 글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어려운 일을 일상에서 매우 잘 하고 있다. 가볍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즐거웠던 일이나 남친/여친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기쁨'을 들어준다. 때론 무거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나, 친구 혹은 부모와의 문제 등과 같은 '슬픔'을 들어준다. 이렇게 우리는 평소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매우 어려운 일들을 해 나간다.
이런 일들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들을 하면서 우리의 삶은 다채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움츠러 들고 그늘졌던 마음이 심폐소생을 받은 것처럼 활력을 되찾고, 밝아지게 된다. 정말 신비롭고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비와 감동이 내 마음에서도 일어난다. 이는 나 자신에게서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 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한다.
시 또한 마찬가지다. '시'역시도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다만, 말하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를 뿐이다.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다는 느끼는 것은 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 비해서 이해하려는 마음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라는 것을 학습의 대상으로서만 인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매우 즐거운 일이나, 너무 슬픈 일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의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즐겁다/슬프다'의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이 안되는 상황이다. 그 마음을 글로 이렇게 저렇게 적어서 표현한 것이 바로 '시'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를 대할 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 상황에서 ~한 마음'을 느끼고 있구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어떤 '상황/마음'인지는 시 안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시를 읽으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려는 데에서 오는 오해이다. '이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거구나'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누구나 잘 아는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를 예로 본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 / 이육사
이 시를 우리가 1연은 수직의 끝, 2연은 수평의 끝, 이런 식으로 배운다. 그러나 '배운다'의 개념이 아니라 '이해한다'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
1연을 보면, '이 사람은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서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온 상황이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매운 계절의~북방으로 휩쓸려 온 것 같은 느낌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연도 동일한 맥락이다. 여기서 '무슨 일인데?'라는 것까지는 명확히 할 필요는 없다. 다만, '화자의 마음이 굉장히 힘들구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구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된다. 3연에서 화자는 너무나 힘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1,2연에서처럼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라고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4연에서 눈 감고 생각-상상함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보고자 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화자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는 화자의 마음에 감동을 얻고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러한 마음을 갖게 하여 마음에 감동을 주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바로 '시'이다. '시'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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