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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거나 습하거나 뜨겁거나 습하거나 올 여름만큼 더웠던 적이 있었을까. 얼핏 올 여름과 '더웠다'는 말이 들어맞지 않는단 생각이 든다. 뜨거웠다. 그렇다, 덥다기보다 매우 뜨거웠다. 마치 지구가 열병을 앓은 것처럼. 나는 지구의 이마 위를 짚고 서 있는 수분을 머금은 아주 작은 생명체로서 속절없이 뜨거워졌다. 이마 위에 물기가 모여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다가 하나의 방울이 되고 이때다 싶은 순간 흘러 내린다. 주륵하고 흐른 방울은 세모난 턱의 끝에 매달리고 처마 끝의 그것처럼 똑 떨어진다.우리의 몸은 열이 나면 땀을 내서 열을 배출한다. 지구는 우리를 통해서 땀을 배출하며 열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문득 나는 불순물이 섞인 지구의 땀이 된 듯하여 이상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뜨겁고.. 2023. 11. 22.
결혼이 의미 있는 이유를 생각함.(2023. 11. 11. 토) 10시 30분 KTX 14시 공군호텔 다혜 결혼식 18시 KTX 20시 강릉 같이 공부하면서 친해진 동생의 결혼식을 갔다. 양가의 아버지들께서 편지를 읽으셨다. 누군가의 부모님이 자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낼 때 나의 부모님의 그것을 떠올리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마음에 비밀의 문 같은 곳이 스르륵 열렸다. 생각이 비밀의 문으로 빨려들어가며 결혼식의 의미를 생각했다. 결혼식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그러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두 사람의 하나된 마음이 있다. 갓 태어난 생명을 보듬고 기억하는 마음이 있다. 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있다. 자기 목숨보다도 소중한 존재가 있다. 함께 길을 걸어 온 마음들이 있다.. 2023. 11. 22.
지구에서 70%는 물 지구에서 70%는 물이다. 인간 몸에서 70%는 물이다. 단단한 빙하가 녹아 내린다. 인간의 무엇이 녹아 내리고 있을까 2023. 11. 20.
찬바람 샤워 찬물 샤워를 하면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찬물 샤워를 한다.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는 경험이다. 사흘 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오는데 바람이 매우 차게 불었다. 오들오들 떨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여전한 오들거림으로 차를 몰아가며 일주일 전의 찬물 샤워가 생각이 났다. 겨울이어서 생찬물이었다. 물이 닿는 부분이 새파란 바다를 찾아 떠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접촉한 부위만 새로운 물질로 바뀌는 기분이라 참 묘했다. 오들오들 떨며 찬물을 끼얹었다. 고통을 참아냈다. '으아아ㅏ아아'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뭔가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개운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찬바람은 달랐다. 시리고 추운 것은 같은데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찬물은 이겨낼 수 있는 게임 같았다. 스스로 시련 속에 둔.. 202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