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찬바람 샤워

by 내쉐샹 2023. 11. 20.

  찬물 샤워를 하면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찬물 샤워를 한다.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는 경험이다. 사흘 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오는데 바람이 매우 차게 불었다. 오들오들 떨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여전한 오들거림으로 차를 몰아가며 일주일 전의 찬물 샤워가 생각이 났다.

  겨울이어서 생찬물이었다. 물이 닿는 부분이 새파란 바다를 찾아 떠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접촉한 부위만 새로운 물질로 바뀌는 기분이라 참 묘했다. 오들오들 떨며 찬물을 끼얹었다. 고통을 참아냈다. '으아아ㅏ아아'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뭔가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개운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찬바람은 달랐다. 시리고 추운 것은 같은데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찬물은 이겨낼 수 있는 게임 같았다. 스스로 시련 속에 둔다. 얼마든지 손목을 살짝 비틀어 샤워기 헤드를 돌려버릴 수 있음에도 참아낸다. 그러나 찬바람은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 그 자체였다. 얼른 피신하는게 좋다. 주차장으로 피신하고서야 "어우, 왜 이렇게 춥냐"라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사흘 후인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찬바람을 맞았다. 그런데 문득 찬바람 샤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끼얹은 찬물처럼 찬바람을 맞았다. 신기하다. 추위에 옷을 쪼아매며 찬바람을 차단했던 때보다 오히려 덜 추운 것 같기도 하고 또 옷을 쪼맬 만큼 춥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영화를 보는 마음이었다가 드넓은 설원을 보는 마음으로 바뀐듯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찬바람이 멈추었다. 찬물 샤워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찬바람 샤워를 했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뜨겁거나 습하거나  (1) 2023.11.22
결혼이 의미 있는 이유를 생각함.(2023. 11. 11. 토)  (0) 2023.11.22
지구에서 70%는 물  (0) 2023.11.20
도토리 나무  (0) 2023.07.02
배우는 사람의 마음가짐  (0) 2023.07.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