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뜨겁거나 습하거나

by 내쉐샹 2023. 11. 22.

뜨겁거나 습하거나

  올 여름만큼 더웠던 적이 있었을까. 얼핏 올 여름과 '더웠다'는 말이 들어맞지 않는단 생각이 든다. 뜨거웠다. 그렇다, 덥다기보다 매우 뜨거웠다. 마치 지구가 열병을 앓은 것처럼. 나는 지구의 이마 위를 짚고 서 있는 수분을 머금은 아주 작은 생명체로서 속절없이 뜨거워졌다.

  이마 위에 물기가 모여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다가 하나의 방울이 되고 이때다 싶은 순간 흘러 내린다. 주륵하고 흐른 방울은 세모난 턱의 끝에 매달리고 처마 끝의 그것처럼 똑 떨어진다.우리의 몸은 열이 나면 땀을 내서 열을 배출한다. 지구는 우리를 통해서 땀을 배출하며 열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문득 나는 불순물이 섞인 지구의 땀이 된 듯하여 이상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뜨겁고 습한 여름. 자연스럽다. 뜨거워야 여름이고 습해야 여름이다. 올 여름은 그리 습하지 않았다. 대신 평소보다 뜨거웠다. 너무 뜨겁다는 생각에 습한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너무 뜨거워서 습기조차 견디지 못하고 위로 더 위로 피신했으려나. 어쨌거나 올 여름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나는 내 공감 능력이 나름 괜찮다, 아니 솔직히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의구심이 든다. 별로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짜증이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며 속으로 욕하기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그런 빈도가 잦아졌다. 주체성을 넘고 고집을 넘어 오집을 가진 고집불통의 꼰대가 되어 가는 과정인가 싶어 조금 놀라고 실망했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뜨거운 어느날 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덥지.' "여름이니까 덥지." 문득 여름의 대답처럼 스쳐갔다. 그렇다. 여름이니까 더웠다. 물론 평소보다 뜨겁지만 올해는 그런 녀석이 찾아온 것이다. 중학생 까불이 녀석이 어느 날은 평소보다 지나치게 까부는 날이 있어 속을 썩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왜'라는 생각 대신 '여름이니까'라는 생각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미간에 힘이 조금 느슨해지고 뜨거웠던 느낌도 조금 덜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왜 저러지?'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환경과 타고난 성향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는, 수많은 씨줄과 날줄의 얽힘과 섥힘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다. 말이 많거나 적거나, 자신감이 넘치거나 부족하거나, 부지런하거나 게으르거나, 싸가지가 있거나 없거나, 배려하거나 이기적이거나,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럽다.

  언젠가 큰 울림을 주었던 시 한 편이 피어 오른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다. 이 시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지금 마주한 누군가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방대한 서사라고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내 앞에 놓인 그가 싫고 밉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에서 말하듯 우리는 '부서지기도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갈들을 밟으며 닳고 부서졌던 나의 삶, 그에 못지 않을 그가 가졌을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삶의 이야기를 얼핏 짐작하고 순간의 경이를 느낀다면 그의 결실에 대해 내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의 가장 아래 칸에는 짜증이나 비난보다 연민의 마음을 담아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작은 울림을 만들어 그와 내가 가져온 미래들이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뜨거운 여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여름을 지내는 마음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다시금 되뇌어 본다.(삶의 진리를 아름답게 표현해 주다니 새삼 감사하다.)

  사람들은 인간을 별에 비유하기도 한다. 별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아득히 먼 곳에서 반짝이는 별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유는 아마 물리적인 거리보다도 그 정체를 분명히 알기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빛나는 것이 인공위성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만큼 신비롭거나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인간도 그런 면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인 것 같다. 겉보기에 아는 것 같아도 마음을 헤아리기는 참 어렵다. 아니 신비로움을 헤아리려 하기보다는 겉모양새에 따라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 유형화해버리고 마는지도 모른다. 그의 빛이나 그림자, 밝음과 어둠, 맑음과 탁함을 별의 반짝임으로 바라본다면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삶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수많은 별이 존재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가장 아래 칸에 어지러이 놓인 마음 대신 연민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 보아야겠다. 다른 사람의 갈피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바람을 닮길 바라며.

 

.

.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에서

댓글